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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29 [331] 2010년 8월 29일 by Elletse

[331] 2010년 8월 29일

일기 2010. 8. 29. 23:25

1.

나는 아직도 크려면 멀었다.
여전히 말랑말랑 하고 보드러운 것만 좋아하고, 딱딱한 것은 싫어한다.
말랑말랑 한 것도 딱딱한 것도 다 나를 위한 것인데, 그 마음을 외면하고 겉모습에만 혹 한다.

그동안 감사하고 행복했던 것이 더이상 그렇지 못한 것은,
그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 변한 것임을 나는 왜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이유로 힘들 것임은 몰랐지만)
그 정도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해.
어디가서 말하기도 부끄럽다, 이런건.

2.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딴 생각으로 가득했던 미사가 끝나고,
지금의 내게는 너무나 과분한 말씀이 적혀있었던 사탕을 받고,
오늘 미사때 봉헌하고 싶었던 내 마음이 다시금 간절하게 느껴졌던 전자동-기숙사 까지의 길.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오려 했는데, 10분만이라는 생각과 함께 기절하듯 지나버린 1시간.
그래도 마저 쉴 생각은 꿈에도 못한채 나를 랩으로 이끌었던, 나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일들.

잘 끝낼 자신이 없다. 무섭고, 두렵다. 피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다.

3.

성당으로 가는 길에 logic analyzer 점검을 도와달라는 후배의 부탁에 살짝 귀찮은 생각도 들었지만,
랩에 돌아와서 사용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조금씩 힘이 났다.

귀찮음으로 시작되었던 설명은, 오히려 설명을 하면서 내가 신나서 이것저것 더 가르쳐주려 하고,
그러면서 2년전 측정을 하던 때가 떠올라서 또 즐거웠다.
회로 디자이너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을 느끼게 해준 측정.
우리 랩에서 조차도 나 말고는 이런 것을 이렇게 해본 적 없을거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던 측정까지.

과연 내가 이번 칩을 성공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마워.

4.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조금만 더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내자.

D-16.

Tape-out의 D-16 때를 떠올리면 그만큼 막막하고 눈물이 날만큼 힘들었던 순간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 순간들을 떠올릴때 아무 생각없이 웃음을 지을 수 있는건 단 하나 때문.
내게 주셨던 말랑말랑하고 보드러운 선물.

계속되기를 바랐지만 그럴수 없다면 현실에 적응해야지.
지나고 나서 이 힘든 시기를 웃으면서 떠올릴 수 있는 것 또한 하나 뿐이다.
그 외의 나머지는 말그대로 선물일 뿐. 받으면 감사하지만, 받지 못해도 실망해서는 안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

Posted by Ellet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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